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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00년 9월 6일(수) : 야운데로

Sidonio 2010. 3. 25. 11:34

 

2000 9 6() : 야운데로

 

- 맑음, 야운데(3:45, 버스), 경비 8,275세파

 

일찍 눈을 떴지만, 어제의 좋은 느낌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탓인지 일어나기가 싫어진다. 그래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인 아침산책을 위해서, 세수하고 동네로 나섰다.

그냥 놓아서 기르는 돼지가 먹이라도 찾는지 연신 꿀꿀대며 길 옆의 마른 도랑을 파헤치고 있다. 옆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좋은 돼지라고 말하며 사겠냐고 은근히 물어온다. 여행 중이라서 살 수 없다고 하니까 그러면 인사라도 하고 가라고 한다. 그 말이 재미있어 돼지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같이 한바탕 웃었다.

아침식사는 어제 저녁을 먹었던 식당에서 해결했다. 오믈렛, , 커피를 저렴한 가격에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빵이 좀 질긴 것은 문제 삼을 필요가 없을 듯 싶다. 오는 길에 마주친 호텔주인의 아들이, 아빠라고 부르며 어리광부리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다른 두 아이와 함께 사탕을 하나씩 주니까 괜히 으스대는 폼에 웃음이 나온다.

호텔을 나와 택시를 이용해서 야운데행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당장은 차편이 없고 오후 1에나 있다니 너댓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어차피 돌아가야 할 곳이어서 가능하면 귀로일정을 늦추었는데, 막상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급해진다. 바푸삼에 가면 차편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그 쪽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올라탔다. 자원해서 차를 안내해 준 아저씨에게 100세파를 건넸다. 모든 형태의 서비스에는 반드시 금전적인 보상이 따라야 한다고 믿는 듯 하다, 상대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운전사는 제외하고도 21명이 짐짝처럼(!) 태워졌는데, 그 중에는 아이가 6명이고 아기도 하나 끼어있다. 더구나 모든 창이 베니어 합판으로 덧대어져 있어서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인상이 험악해 보이는 운전사는, 가는 내내 욕설을 해대고 운전도 난폭하다.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비가 오기 시작해서 지붕에 실은 짐을 덮기 위해서 잠시 정차한 것을 빼고는 운행은 순조로운 편이다. 가다 보니 왼편으로 창Dschang으로 갈라지는 길이 보인다. 원래는 그 곳도 여행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싶어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다음을 기약한다.

 

바푸삼에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날씨가 화창하다. 야운데행 버스표를 사고는 화장실부터 갔다 왔다. 아무리 지저분한 화장실이라도 반드시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는 우리나라가 인심이 후한 게 아닌가 싶다.

차에 오르니 대부분의 자리를 짐 등으로 심지어는 손수건으로도! - 미리 잡아 두었다. 그렇게 자리를 맡아뒀어도 일찍 와서 앉아있지 않으면, 통로도 없이 승객을 채우는 통에 나중에는 들어오기도 힘들다. 한 열에 다섯 명씩 태워서 좀 답답하지만 차는 미니버스 수준으로 대체로 깨끗한 편이다.

한 시쯤에 차가 출발했다. 길이 좋으니 주위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시골 마을과 얕은 숲이 교대하듯 이어진다. 중간에 버스가 서기라도 할라치면 일부 남자승객들은 버스 창 바로 옆에 뒤돌아서서 소변을 보는데, 당사자나 보는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무심하다. 스피커가 바로 머리 위에 있어서 계속 틀어대는 음악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비가 조금 내렸지만 무사히 바피아Bafia에 도착해서 승객 2명을 내리고는 곧장 다시 출발이다. 문득, 다른 승객들은 모두 짐을 버스 지붕 위에 올리고 홀가분하게 가고 있는데, 혼자서 무거운 배낭을 무릎에 안고 불안해 하면서 여행하고 있는 것 같아 쓴 웃음이 나온다. 아프리카에까지 와서 여행하고 있으면서, 그것도 현지 사람들 속에 묻혀서 1년이나 살았으면서도, 아직 하찮은(!) 소지품에 집착해서 마음을 편안히 놓아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자유로워 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뒷자리의 중년 여인은 영국문화원 영어반에서 같이 공부했던 "바키수"와 많이 닮았다. 바키수는 북부지방 출신인데, 발바닥과 발가락 전체에 검은색으로 새겨져 있는 문신은 그 종족의 전통이라고 했다. 큰 키에 가냘픈 몸매, 무엇보다도 맑고 검은 눈동자와 약간은 수줍어하는 듯 하던 태도가 인상적이었는데 늘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다. 비슷한 외모와 분위기를 풍기는 걸로 보아서 아마 같은 종족인 듯한데 웬지 눈이 무척 슬퍼보인다.

버스는 어느새 사나가강을 건넜다. 이 강은 북부의 은가운데레에서 시작해서 두알라까지 이어지는데, 중부카메룬의 젖줄 구실을 하고 있다. 옆 자리에 앉은 선남선녀는, 처음에는 같이 잡지를 보면서 얘기를 나누며 친해지는가 싶더니, 가벼운 접촉을 거쳐서 결국은 남자가 여자에게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넘겨준다. 청춘남녀 사이에는 어디에서건 사랑이 피어나는 게 당연하다, 그 곳이 만원버스일지라도.

높고 푸른 하늘, 하얀 뭉게구름, 그 아래로 펼쳐진 친근하게 느껴지는 수풀이 연이어서 계속 지나간다. 숲으로 드문드문 나 있는 작은 길들이 보이는데, 다시 돌아 나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길로 한 없이 걸어 들어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네 시 반쯤에 야운데에 도착하니 새삼 덥게 느껴진다. 택시를 타고 집에 오면서 근처에서 바나나 파는 아주머니에게 인사하고 6개를 샀다. 역시 싱싱하고 저렴해서 좋다. 짐을 대강 정리하고 나서, 샤워도 하고 밀린 빨래도 할 계획이었는데 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번에 여행 다닌 지역 중에서 상황이 가장 취약한 곳(?)이다. 미리 받아 둔 물이 조금 있어서 손발만 간단히 씻었다.

무사히 여행을 마친 것을 자축도 할 겸, 집 근처에 있는 식당 아틀란틱으로 갔다. 이 집은 야운데에 있는 식당 중에서도 맛있고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좋은 평을 받고 있는 곳이다.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맛이 있어 감자튀김, 완두콩 줄기까지 깨끗하게 비운다.

집으로 와서 커피와 바나나를 먹고 있으니, 불이 켜져 있어서 혹시나 하고 와보았다며 후배단원이 찾아왔다. 열흘 만에 보니 새삼 반갑게 느껴진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가고 난 다음, 내일은 그들이 근무를 시작했을 진료소를 방문하기로 한 것을 되새겼다. 가는 길에 음료수나 두어 병 사가야겠다.

평소와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왠지 잠이 오지 않는다. 여행을 떠났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갑자기 낯설어진(?) 환경 탓일까? 여행을 가장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지금 막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이라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출처 :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글쓴이 : 그러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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