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관련/비행기

[스크랩] [아카데미,아이디어과학]1/72 1/48 U2,SR-71,AIRWOLF

Sidonio 2011. 6. 27. 15:33

진열장 바닥 청소 중 국민학교(초등학교)시절 문방구에서 구입해서 아직까지 살아있는 노땅 삼총사입니다.

U2,SR-71 슈퍼블랙버드 정찰기와 추억의 MBC 외화 "양의 탈을 쓴 늑대" AIRWOLF 입니다.

 

 

1980년대 중반 MBC에서 AIRWOLF 방영시 아이디어과학에서 1,500원에 판매되어 3대 구입하여,지금까지 살아남은 1대 입니다.

당시 500원짜리 아카데미 에나멜로 흉내만 내었던 AIRWOLF 카피 제품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마지막 메뉴얼은 극장판 "블루썬더"입니다. 동체는 어느 박스 안에서 인가 행방불명 중 입니다.

 

 

 

길이 32.74미터, 날개폭 16.94미터, 기본 중량 30.6톤, 최대 이륙 중량 78톤, 최고 속도 마하 3.2(3,530km/h) 이상. 최고 상승 고도 8 5천 피트(25,900미터) 항속거리 5,925km의 괴물 항공기. 바로 록히드 SR-71 블랙버드이다.

1966년 실전 배치되어 지금도 공기 흡입식 항공기 중 가장 빠르고 가장 높은 고도까지 올라간 세계 기록을 가진 항공기.
하지만 의외로 블랙버드의 형제기들이나 계발 배경에 대해선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전체적으로 수다나 떨어보기로 한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지난번 이야기를 했던 록히드 U-2 고공 정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구 소련의 방공 레이더를 피해 초 고공 7만 피트 상공을 비행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U-2 이지만 1956년 첫 소련 영공 침투에서 보다 발전한 레이더에 포착되어 원래의 고공 정찰기로서는 나름 성공적이었지만 적의 포착을 피한다는 것은 실패한 상황. 이에 미 중앙 정보부 CIA U-2를 계발한 록히드사 스컹크웍스에 U-2레이더 반사면적(레이더 단면적. RCS. Radar Cross Section)을 줄여줄 것을 요구했다.

 

통칭 레인보우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적은 U-2의 레이더 전자파 반사량을 최대한으로 줄인다는 것이었다.

지난번 스텔스 전투기 편에서도 잠깐 이야기를 했듯 레이더 전자파의 반사량은 항공기의 크기보다는 그 형태에 좌우된다는 점과 항공기의 재질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는 것. 하지만 본격적인 스텔스 기술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당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레이더 전자파를 기체가 흡수하거나 레이더 전자파가 반사되는 것을 방해하는 반사판을 장치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몇 가지 기술이 연구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통칭 Wallpaper(벽지)라고 불리는 레이더 전자파 흡수 특수 도료. 록히드와 린콜린 연구소에서 계발한 이 도료를 U-2의 기수부분에 칠해 고주파 레이더의 전자파를 흡수하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저주파 레이더의 포착을 피하는 방법으로 날개 부분에 와이어를 설치한다거나 하는 별도의 추가 장비들도 연구되었는데 역시 가장 큰 성과라면 레이더 전자파 흡수 도료인 Wallpaper 였다.

 

하지만 이 도료엔 약간 문제가 있었다.
전자파 흡수 효과는 있었지만 그와 함께 상당한 보온(?) 효과가 있어 이 도료를 칠한 U-2의 기수부분 내부 온도가 상당히 올라간다는 점. 처음엔 기수 위, 아래 모두에 도료를 칠했다가 이 온도 문제가 발견되자 기체의 아래 부분만 도료를 칠하는 것으로 변경 됐다. 하지만 온도 상승 문제는 크게 달라지지가 않아서 1957년 테스트 비행에서 내부 온도의 지나친 상승에 엔진이 정지, 기체가 추락하며 조종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와 함께 저주파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설치한 와이어 장비들이 항공 역학적인 부분을 방해했는지 최고 상승고도가 5만 피트로, 항속거리도 기존의 20% 밖에 내지 못할 정도로 성능이 크게 떨어지면서 결국 U-2의 개량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간다.

 

하지만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레이더 전자파 흡수 도료의 발명과 여러 가지 자료들을 손에 넣은 록히드사는 즉시 소련 영공을 침투할 수 있는 새로운 정찰기의 계발에 들어간다.

 

닉네임 아크엔젤(Archangel).

U-2를 만든 스컹크윅스에서 시작된 이 새로운 항공기는 초기 아크엔젤-1, 아크엔젤-2라는 방식으로 초안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이후 명칭을 줄여서 간단히 A-1, A-2 라는 식으로 진행, 최종적으로 A-12 설계안이 채택되면서 A-12 통칭 아티클(The Article) 121이라는 명칭으로 1959 CIA가 채택, 1960년 코드 네임 OXCART라는 명칭으로 12기의 A-12를 주문한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62년 테스트 중인 A-12


최초의 A-12 1962 4 26, 그롬 호수(Groom Lake) 테스트 기지(AREA 51)에서 최초 비행에 성공, 마하 1.1의 속도를 기록했으며 Pratt & Whitney J75 엔진(U-2와 동일 계열의 엔진이지만 에프터 버너 기능을 그대로 가진 모델. 출력 17,000 파운드)을 장착한 최초의 5기가 낸 최고 속도는 마하 2.0을 기록했다. 1962 10, J57보다 2배 강력한 34,000파운드 출력의 신형 J58 터보제트엔진이 만들어지면서 1963, A-12는 마하 3.2라는 터무니없는 속도를 기록한다.


비록 1963 5, A-12가 한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테스트는 순조롭게 진행 1964년 마지막 A-12가 인도될 때까지 2,850회의 테스트 비행 기록을 가지게 된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실전 배치된 A-12

 

하지만 U-2를 대신해 소련 영공을 침투한다는 A-12의 원래 목적은 한번도 실현되지 못했다. 일단 아무리 성능적으로 우수해졌다고 해도 소련 영공은 여전히 너무나도 위험하다는 것과 인공위성이 실용화되면서 더 이상 유인 정찰기가 소련으로 들어갈 필요성이 없다고 여겨진 것.


대신 A-12는 소련 대신 아시아 쪽 정찰에 운영되기 시작했다.

1967, 일본 오키나와에 3기의 A-12가 배치, 고도 8만 피트, 마하 3.1의 속도로 북 베트남의 대공 미사일 배치 상황을 정찰하고 1968년 미 해군 정보 수집함 USS Pueblo 호가 북한에게 나포되었을 땐 북한 영공으로 침투,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고 한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유일한 복좌형 A-12B. 뭔가 좀 불안정한 후방석 위치가 특징.


하지만 A-12가 실전에서 이렇게 활약을 할 당시 이미 A-12 계획을 1966 12월 공식적으로 취소된 상태였다. 계발비의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SR-71이 완성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A-12의 생산 대수는 총 13. 하지만 변형이 있었다.

1950년대 말, 미 공군은 F-106 델타다트를 대체할 새로운 장거리 요격 전투기(Interceptor)를 필요로 했다. 이에 만들어진 것이 마하 3의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노스 아메리칸사의 F-108.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모크업만 만들어진 F-108 레이피어(Rapier)


하지만 F-108 1959년 미국 국방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단 1기의 모크업 기체만 만들어진 채 중지된다.  하지만 이때 록히드에서 한창 A-12를 계발하고 있었기에 스컹크웍스의 켈리 죤슨은 A-12의 무장형으로 AF-12라는 기체를 미 공군에 제시한다.

 

기존의 A-12와 다른 점이라면 기수부분에 휴즈사의 화기 관제 레이더를 설치하고 후방석을 추가해 화기 제어를 맡겼으며 기존에 정찰 장비를 탑재했던 부분을 개량, 4기의 AIM-47 펠콘 공대공 미사일을 내장하도록 변경됐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공식명 YF-12A. 화기 관제 레이더의 설치로 기수 형태가 달라졌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YF-12A의 조종복(구형)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정거리 100마일(160km)에 핵탄두까지 장착이 가능한 AIM-47.
                            F-108을 위해 계발되었지만 실전 배치는 되지 못하고 후에 AIM-54 피닉스 미사일의 
                            기본이 된다. 


정식으로 YF-12A라는 명칭을 받은 AF-12 1963 8월 첫 비행을 치르게 되고 미 공군은 1965 5 93기의 양산형 F-12B를 주문, 항공 방어 사령부에 배치하기로 한다. 하지만 베트남 전이 발발하면서 F-12B 구입 비용이 나오지 않게 되고 직접적으로 적 항공기의 공격을 받을 확률이 지극히 낮은 미 본토 방어용인 F-12B는 그 필요성이 차차 사라지면서 1968 1, 공식적으로 F-12B 프로그램은 중지된다. YF-12A는 총 3기가 제작.

 

A-12의 또 하나의 변형은 M-21이라고 불리는 기체가 있다. 외형은 A-12와 거이 동일하지만 M-21 D-21이라는 무인 정찰기를 탑재한다는 점.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모체인 M-21과 무인 드론 D-21


원래 구 소련 영공에 침투, 정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A-12이지만 1960 U-2 격추 사건 이후 그 위험성 때문에 직접 구 소련 영공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에 A-12의 무인 정찰기 구상이 나왔는데 A-12 자체는 너무 크고 복잡해서 무인화 하기 쉽지가 않았다. 이에 켈리 죤슨은 A-12에 사용된 기술을 사용, 유사한 용도의 보다 작은 무인 드론 Q-12를 만들게 된다.

 

Q-12는 작은 델타익 날개에 1기의 램 제트 엔진을 사용, A-12와 동일한 마하 3.35의 비행 속도를 가지고 있으며 미리 지정된 항로를 비행, 목표를 촬영하고 안전 위치에 도착하면 카메라 모듈을 분리 시키고 본체는 자폭(!)해버리는 방식. 레이더 반사 면적이 지극히 적고 항공 역학적으로도 우수했던 Q-12 1963년부터 정찰과 순항 미사일 겸용으로 운영되도록 본격적인 계발에 들어가고 드론의 명칭은 D-21로 드론 발사용 복좌형 A-12 M-21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어 2기의 M-21 38기의 D-21이 만들어졌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M-21/D-21 조합기는 1966년 비행 중 사고로 M-21의 도입은 중지되고 D-21 B-52 폭격기의 날개에 매달려 테스트를 계속하다 1971년 종결된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B-52에 설치되 테스트 중인 D-21



 

..그러면 도대체 외형상 A-12와 거이 구별이 안 가면서 명칭이 다른 SR-71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중요 포인트 하나는 A-12는 미 공군 소속기가 아니라 CIA에서 주도, 계발한 정찰기라는 것.

 
1962년 마하 3으로 비행할 수 있는 초 고공 장거리 폭격기 XB-70 발키리의 계발이 한창일 때 미 공군은 이 폭격기를 이용, 장거리 정찰기를 만들어보려는 생각으로 정찰/공격기(Reconnaissance/Strike) RS-70이라는 기체를 구상한다. 하지만 발키리를 이용하는 것보다 테스트 중인 A-12가 정찰 용도 면에서 보다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 미 공군은 1962 12 R-12라는 명칭으로 A-12보다 크고 무거운 전략 정찰기를 주문한다.

 

CIA가 중심으로 구 소련 영공 침투라는 거이 단일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A-12에 비해 본격적인 다목적 전략 정찰기로 운영되는 것이 목적인 미 공군 R-12는 기수를 늘여 내부 연료 탱크를 증가, 항속거리를 늘이고 추가 조종석과 정찰 장비를 보강, 측면 수색 레이더와 카메라 등을 갖춰 A-12보다 더욱 다양한 작전과 정찰 임무에 투입할 수 있게 된다. 비록 추가 장비들 때문에 최고 속도와 상승 고도 면에서 A-12보다 약간 뒤지지만 R-12는 순조롭게 계발이 진행, 1964 12 22일 첫 비행에 성공한다.

 

1964년 미 대통령 선거 기간 중 구 소련의 새로운 무기 시스템들에 대항, 미 공군에 고공 고속 요격기 YF-12A와 전략 정찰기(Strategic Reconnaissance) RS-71의 도입을 결정하는데 당시 공군 참모 총장인 커티스 리메이 장군이 RS-71보다는 SR-71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고 해서 R-12 SR-71이라는 제식명을 받았다. (일화라면 언론에 발표한 명칭은 RS-71인데 리메이 장군이 계속 SR-71이라고 언급을 했고 대통령 조차 이렇게 알고 있었기에 명칭이 바뀌었다는 설도 )

 

어쨌든 YF-12A의 계발은 중지되었어도 SR-71의 계발은 진행되어 1965년 무려 29,000장의 새로운 설계도면과 함께 SR-71 매뉴얼이 만들어졌고 양산을 위해 준비에 들어갔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A-12때도 같은 상황이었지만 SR-71 블랙버드의 설계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 중 하나가 마하 3이라는 초음속 비행시 고온 발생에 대한 것이었다. 일반 항공기 재료로는 마하 3 비행시 발생하는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녹아버리기에 고온에 견디는 것은 물론 초음속 돌파 시 기체가 받는 커다란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특수 재질이 필요했고 덕분에 블랙버드는 기체프레임의 85%가 티타늄(Titanium)으로 만들어져 있다.

1791
년 영국에서 발견, 그리스 신화의 거인, 타이탄(Titans)의 금속이라는 의미에서 티타늄이라고 이름 지어졌고 높은 내열성과 강도, 지극히 가벼운 무게 등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금속이라고까지 불리는 물질. 하지만 당시 지구상에서 거이 유일하게 대량의 티타늄이 나오는 곳은 다름 아닌 소련 연방이었고 냉전 시기, 그것도 극비 항공기를 제작하는데 정상적인 경로로 티타늄을 미국에서 사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록히드사는 가히 천재적이라고까지 불리는 여러 가지 경로로 대량의 티타늄을 소련으로부터 들어오는데 성공, (자세한 사항은 아마 극비인 듯.)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U-2의 레인보우 프로젝트에서 알아낸 대량의 자료들을 토대로 기초적이기는 하지만 최초로 실용적인 스텔스 성을 가진 SR-71을 만들어낸다. 참고로 기체 표면은 완전 검은 색이 아닌 거이 검은색에 가까운 어두운 청색인데 이는 기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을 감출 뿐 아니라 밤 하늘에서의 위장 효과를 생각해 정해진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SR-71은 애칭으로 블랙버드라고 불렸는데 이것이 후에 제식명처럼 사용된 것.

 

블랙버드에게는 U-2와 비슷하지만 더욱 더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일단 일반적인 전투기와 항공기에 사용되는 산소마스크는 고도 4 3천 피트(13,000미터) 이상에서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로 하는 산소를 100%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 고도 7만 피트까지 올라가는 U-2는 우주복과 같은 조종복이 필요했는데 문제는 블랙버드는 기본 상승고도가 8만 피트(24,000미터)인데다 마하 3.2라는 초음속 비행을 한다는 점이다. 기체 자체가 받는 열은 둘째치고 마하 3.2로 비행하는 블랙버드에서 주변으로 흐르는 공기의 온도만 무려 섭씨 230, 이로 인해 조종석 내부 온도도 무려 120도까지 상승했다. 이는 당시 사용하던 U-2의 우주복으로도 조종사가 견디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블랙버드는 U-2보다 한층 강화된 조종복이 필요했다. 이와 함께 조종석엔 추가로 에어컨이 설치, 뜨거운 공기를 연료 탱크로 전달해 연료의 기화를 돕는데 사용된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블랙버드용으로 만들어진 조종복. 현대식 U-2도 동일한 조종복을 착용.

 

블랙버드의 엔진 역시 일반 전투기와 조금 다른 방식. 일반 전투기 엔진의 에프터버너(Afterburner)는 기체의 이륙이나 초음속 비행과 같이 평소보다 높은 엔진 출력을 필요로 할 때 사용하는 기능으로 간단히 평소보다 더 많은 연료를 투입, 엔진 출력을 높이는 것이다. 덕분에 에프터버너 사용시 전투기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연료를 소모하게 되기에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도록 되어있는데 블랙버드의 Pratt & Whitney J58-P4 엔진은 기본적으로 에프터버너가 항상 돌아가도록 되어있다. 물론 저속 비행시에는 에프터버너 없이 일반 터보제트 방식으로 비행이 가능하지만 고속 비행시 램제트(Ramjet)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램제트는 간단히 설명하면 팬을 사용해 공기를 압축, 연료와 혼합, 점화하는 제트엔진과 달리 팬이 없이 기압으로 공기를 압축, 점화하는 방식이다. 팬과 공기 압축 구조가 없기에 램 제트 엔진은 일반 제트엔진보다 훨씬 구조가 단순해지지만 기압만으로 공기를 압축해야 하기에 기체 자체가 상당히 고속 비행 상황이 아니면 효율이 지극히 떨어지거나 작동이 불가능한 구조. 따라서 램제트 엔진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항공기의 비행 속도가 최소 마하 2 이상이 되어야 한다.

 

블랙버드의 J58엔진은 램제트 엔진과 터보제트 엔진을 하나에 갖춘 엔진이다.

독특한 형태의 공기 흡입구 부분은 저속과 고속에서 자동적으로 흡입 공기량을 조절해주고 엔진 중앙에 팬을 가진 터보제트 엔진 기관이 있어 저공, 저속 비행시 작동을 한다. 하지만 고속 비행에 들어가면 흡입된 공기가 터보제트 엔진 구역을 건너뛰어 바로 후미부분 램제트 기관으로 전달되고 제트 엔진 기관은 출력을 낮추다 정지, 이때부터 압축 공기와 연료만을 사용, 초음속 비행이 가능해진다. 마하 3에 도달하면 이미 높게 가열된 기체 온도 덕분에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 자체도 상당히 고온 상태로 유지되고 이런 고온의 공기는 적은 연료에도 충분히 점화가 가능하기에 기본적으로 에프터버너 기능이기는 하지만 블랙버드는 다른 그 어떤 항공기와 달리 높은 연료 효율을 가지고 있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블랙버드의 마하 3.2(시속 3,530km) 속도는 최고 속도가 아니라 순항 속도라는 점. 이는 J58 램제트 기관이 이 속도에서 가장 높은 효율을 내기에 정해진 것으로 즉, 엔진 최고 출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블랙버드의 최고 속도는?

일단 연구상으로 J58엔진 2기는 블랙버드를 마하 6까지 가속시킬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속도에선 기체는 둘째치고 조종사가 견디지 못하기에 실제 시험은 못했지만 비 공식 테스트에서 마하 3.6까지 비행한적이 있다고 한다.

 

SR-71 블랙버드의 최초 비행은 1964 12 22. 최초 실전 배치는 1966 1월에 이루어졌다. 1968 3, 일본 오키나와 미군 기지에 기존에 배치되어있던 CIA 소속 A-12(1967 5월에 배치)들을 대신해 같은 해 5월 최초로 실전 투입되었으며 A-12와 함께 뱀과 같은 기수 형태 덕분에 일본어로 하부(Habu: 일본 살무사의 한 종류) 라고도 불렸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블랙버드의 총 생산 대수는 32. 정찰기인 만큼 무장은 없다. 하지만 블랙버드는 마하 3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고 적의 지대공 미사일 공격을 당해도 움직임이 둔한 U-2와는 달리 고도 8만 피트에서 단순히 속도를 높이는 것만으로 모든 공격을 피할 수가 있다. 현역 기간 동안 블랙버드는 총 3,551회 임무에 출격, 53,490 비행 시간을 가지고 있으며 이 중 11,675시간을 마하 3 이상의 속도로 날았다.


1970
년대, 신현 B-1 폭격기와 같은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인공위성과 같은 새로운 정찰 장비들이 실용화되면서 운영비 문제, 그리고 전략 정찰의 개념과 기체 성능 등에 대한 지식이 없는 국회의원들 등 때문에 블랙버드를 조기 퇴역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988년 미 의회는 1기의 훈련기를 포함 단 6대의 블랙버드만 현역으로 유지하고 나머지 기체들은 (60일안에 재가동이 가능한 상태로) 밀폐 보관하기로 결정을 내리지만 공군에서 이를 거부, 미 해군에서 얻지 못한 러시아 북부 지역의 고해상도 정찰 자료를 획득하면서 퇴역 결정에서 살아남는다. 하지만 1989년 결국 블랙버드의 퇴역이 결정, 그 해 10월 마지막 비행을 갖게 된다.

 

하지만 블랙버드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온다.

중동과 북한의 위협적인 움직임에 미 의회는 1993년 블랙버드의 재 운영을 검토하게 되고 특정 지역을 한 순간만 정찰할 수 있는 인공 위성과는 달리 그 어떤 지역이라도 거이 실시간 정찰 영상을 보낼 수 있는 U-2와 블랙버드의 중요성이 인정되면서 재 운영이 결정된다.

 

블랙버드의 두 번째 퇴역은 1998. U-2와는 달리 상당한 유지비가 필요한 블랙버드는 무인 정찰기가 등장하면서 장기 운영에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내려지면서 1998 6월 퇴역. NASA에서 운영하던 2기는 1999년 퇴역하면서 모든 블랙버드들이 현역에서 물러난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훈련용 블랙버드. 동일한 형태의 조종성이 2개 있는 것이 특징.


비록 현역에서는 물러 났지만 블랙버드는 1976년 세운 항공기 세계 최고 속도 기록은 물론 고도 85,069피트(25,929미터)의 최고 상승 고도 기록, 보잉 747 여객기로 6시간 15분이 걸리는 뉴욕 - 런던을 단 1시간 54 56.4초에 주파, 콩코드 여객기가 가진 2시간 52분을 훨씬 단축했으며 그 외 다양한 세계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구 소련은 물론 베트남, 북한에도 여러 번 들락날락했으며 1964년부터 1998년까지 사고로 12기가 추락했지만 실전에서 격추당한 블랙버드는 없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블랙버드는 퇴역은 했지만 여전히 기밀 사항이 많은 기체라 생각됩니다.


 

출처 : 플라모델(plamodel)
글쓴이 : 2기통짱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