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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몽골 - 울란바타르

Sidonio 2010. 8. 30. 11:40

 



몽골 - 울란바타르

울란바타르(Ulaanbaatar)는 몽골의 수도로 경제, 몬화, 교육 등의 중심지이고 인구는 약 87만 명이며 면적은 1,358 제곱km이며 총 몽골 인구의 1/3이 살고 있다. 1924년 인민혁명이 달성된 후 몽골인민공화국이 선포되고 도시명도 혁명 영웅인 수흐바타르(Sukhbaatar)를 기념하여 이흐 후레(Ukh khuree - 큰 도시라는 뜻)에서 울란바타르라고 개명했다. 남방 성산 보그드산을 위시한 4 개의 산에 의해 분지로 둘러 싸여져 있으며 툴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해발 1351m, 7월 평균기온17도, 연강수량 270mm 중 대부분이 여름에 비가 온다.


아래 몇장의 사진들은 이태준 기념공원이다. 경상남도 함안에서 출생한 이태준(1883~1921)은 1907년 세브란스의학교에 입학했다. 그가 의학교 재학 중이던 1910년 2월, 안중근 의거 직후 통감부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안창호의 권유로 신민회의 자매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구국운동을 시작했다. 1911년 세브란스의학교 제2기로 졸업한 이태준은 모교 병원에서 잠시 근무하다가 이듬해 남경(南京)으로 망명해 기독회의원(基督會醫院)에서 의사로 근무하며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했다.

1914년 김규식의 권유로 울란바타르로 이주해 동의의국(同義醫局)이라는 병원을 개업하여 몽골 국왕 보그드칸의 어의(御醫)로도 활약했고, 몽골 왕족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으며, 국왕은 인술로 다수의 몽골인을 구제한 그의 공적을 기려 제3등 국가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탁월한 의술로 몽골 사회에 기여하는 한편, 한국의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그의 병원은 독립 운동가들의 숙박지와 연락 거점으로 제공되기도했다. 그러나 1921년 울란바타르를 점령하고 대대적인 약탈과 학살을 자행한 러시아 백위파 부대에 의해 살해당했다.

 

 

 

 

 

 

 

 

 

 

아래 자이승 전승탑은 제2차세계대전 때 러시아와 연합하여 독일의 승리를 기념하며 전쟁영웅과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울란바타르 시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산으로 둘러싸인 울란바타르의 가장 멋진 전망을 제공하는 곳이다.

 

 

 

 

 

 

 

 

 

 

 

 

 

내려다보는 울란바타르 시내 

 

시내 가운데로 툴(Tuul)강이 유유히 흐른다.
이강은 최종적으로 바이칼 호수로 흘러든다.

 

한국 불교계에서 기증한 불상 

 

 

 

울란바타르는1995년 서울특별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그리고 1996년 7월에는 몽골의 독립기념일을 맞아 나트사그도르지의 거리 1km 정도를 서울의 거리로 지정하였다.

 

시내의 아름다운 건물들 

 

 

 

 

 

도시의 중심부에는 수흐바타르(Sukhbaatar)광장이있다. 이곳은 1921년 혁명의 영웅인 뎀디니수흐바타르가 중국으로부터 몽골의 독립을 선언한 장소이다. 결과적으로 1989년에 공산주의를 무너뜨리고 집회를 열었던 첫 번째 장소이기도 한 수하바타르는 각종 국가행사들이 개최되며 평상시에는 조용한 정취를 느끼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정부 청사 

 

 

 

 

 

 

 

 

 

몽골 역사 박물관 

 

몽골 자연사 박물관. 공룡 화석이 많다. 

 




출처 : Blue G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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