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보/남수단

[스크랩] 남수단에서 있었던 일들...

Sidonio 2012. 3. 27. 21:39

4) 남수단 과 콩고의 MAROBO 지역

 

KAYA국경(우간다, 콩고, 남수단)을 통하여 남수단에 입국하여 몇 시간을 자동차로 이동하여 MAROBO지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은 콩고와 국경을 같이 하는 곳으로서 한 달에 약 2주일간 이곳 선교 센타에 와서 각 지역 목회자들이 기숙사에 숙식하면서 공부하고 다시 집과 교회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수효는 약 20명 정도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콩고에 들어가서도 사역자들을 훈련시켜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곳은 토착민들인지라 국경의 개념도 모르고 자유롭게 왕래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곳 MAROBO지역에 LASUBA학장이라는 분도 우간다 신학교에 3년 과정 디플로마 과정을 이수한 분이어서 저희의 동영상강의를 보고 듣고 깊은 관심을 갖고 자신은 BA과정을 등록하여 공부한다고 하였고 자신이 가르치는 농촌지역 목회자들에게 가르쳐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분은 나이가 좀 들었지만 학구열이 있고 가르치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LASUBA학장에게 동영상 1학기 분을 전달하였습니다.

이곳은 전기가 없는 지역이라서 모터 발전기를 돌려서 야간에 1-2시간정도 센터에 전기를 공급하였습니다.

 

5) 남수단 수도인 JUBA지역과 상황

 

남수단 수도인 JUBA(쥬바)지역 까지 멀고 먼 거친 비포장도로를 거칠게 운전하여 도착하여 미리준비하고 기다리는 JUBA의 조그만 교회 목사들과 지도자들에게 휴대용 동영상(DVD)를 가지고 가서 보여주었습니다.

전기가 없는 이곳에서 아주 유용하였습니다.

다행히 한번 밭데리를 충전하면 2-3시간은 보여줄 수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저녁에는 전기불도 없는 목회자의 집에서 기거하였는데 나일강 주변은 항상 위험한 악어와 낙지떼가 먹을 것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 어린이가 물가에서 수영하다 악어 물려 나일강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합니다.

남수단의 수도인 JUBA를 오고 가면서 보았지만 거의 비포장도로였습니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시간이 흐르면 경제가 발전하리라고 희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단전체의 석유 2/3가 남수단에서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북수단과 50년간 전쟁을 통하여 죽임과 약탈과 가난, 질병, 굶주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가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과 긴장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고 안내자 없이 저 혼자서 다니기에는 아직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물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쌉니다. 케냐에는 세멘트 한 포대에 약 10달러하지만 남수단은 20달러였습니다.

공산품이 생산이 안되고 거의 모든 물품을 수입하므로, 수송비등으로 물건 값이 매우 높습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으니 그러합니다.

 

전국이 거의 비포장도로이므로 이동할 때마다 차량에 흙먼지가 쉽게 들어와서 강렬한 햇빛을 피하려고 쓴 선글라스가 10분도 안되어 먼지로 뒤덮여서 자주 닦아내야했고 도중에 잠간 쉬기 위해서 내릴 때는 사람들의 옷이나 머리에 먼지로 수북하게 쌓여 자주 털어내야 했습니다.

이 근처에는 오래전에 저희 케냐 신학교에 와서 훈련받은 딩가족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이 부족들의 표식은 앞이마에 한일자 모양의 여러개 상처를 내어 흠집을 만들어서 부족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6) 다음에 방문할 때는 공무원들을 타켓으로 신학교육을 하려고 기도중입니다.

 

MAROBO에서 만난 한 교도관 공무원은 나이가 38세이고 이름은 ABDALLA BERO 입니다.

12살에 독립운동을 위해서 징집되어 이슬람정부인 북수단과 수없는 전투를 하였습니다.

 

1987년 전투에서 적과 총격전을 치르다가 중상을 입게 되었는데 그때 총탄이 오른쪽 팔뼈에 박혀서 아직도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총탄은 등 옆구리 박혀있답니다.

움직일 때마다 가끔 통증을 느끼지만 아무런 수술시설이 없었기에 지금까지 25년 동안 2개의 총탄을 몸에 지니고 살며 언제인가는 수술하여 제거하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어린나이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터에 내몰려서 수없는 전투와 굶주림에도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이제는 남수단이 독립되어서 신앙도 자유로이 하며 현재는 교도관으로 근무하며 가족을 이루며 사는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이름 첫 글자가 모슬렘 이름이라서 모슬렘이 아니냐고 했더니 북수단 이슬람정권이 강제로 모슬렘으로 믿도록 ABDALLA로 이름을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인다고 하여서 할 수 없이 그대로 호적에 올려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사연이 참 많았습니다.

때가되어 누군가에 의해서 도움이 되어 총탄이 수술로 제거되었으면 하는 바램니다.

 

2012년 새해 들어서 하나님께서 전쟁으로 국민 80%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남수단백성들을 위하여 신학교육을 통한 지도자들의 교육과 복음전파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제는 아프리카에 한번쯤 방문하시면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할 것입니다.

출처 : 위드24 (WITH24)
글쓴이 : ksjamb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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